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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밌겠다.. 사진 많이 찍어 오세염~

유전자 조작 곡물의 심각성은 6월20일(금) 밤 10시~10시45분 [MBC스페셜 밥한공기]에서 경악할 만한 내용이 방영되었습니다.. [다시보기]를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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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6월 6-7일 오후5시 하자센터 999클럽에서 쥐를 잡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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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호:38
제목:평화의 근원적 의미를 생각한다 <이반 일리치>

조회:372
작성일:2007-10-24 14:44:08
수정일:2007-10-24 14:44:08

게시물주소: http://solidareco.ohpy.com/120977/38

글내용 본문

 

                 평화의 근원적 의미를 생각한다


                                                                                                           이반 일리치

   

  

(---)

  평화는 각 시대와 각 문화영역에 따라 서로 다른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이것이 타케시 이시다 교수가 지적하고 있는 문제입니다. 그리고, 그가 우리들에게 상기시켜주고 있는 것처럼, 각 문화영역 내에서도 평화는 중심부와 주변부에서 서로 다른 것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중심부에서는 "평화의 유지"가 강조되지만, 주변부의 사람들은 "평화로이 내버려두어져 있기"를 바랍니다. 지난 30년간의 이른바 '개발의 시대' 동안에 후자의 의미, 즉 '민중의 평화'는 사라져버렸습니다. 이것이 나의 주된 논제입니다. '발전'이라는 외피 밑에서 세계 전역을 통하여 민중의 평화를 깨트리는 전쟁이 계속되어왔습니다. 오늘날 세계에서 발전이 이룩된 지역에서는 민중의 평화는 사실상 사라져버렸습니다. 나는 경제발전에 대한 제약 ― 풀뿌리에서 시작하는 ― 이야말로 민중이 자기의 평화를 회복하는 데 필수 조건이라고 믿습니다.



  평화의 다양한 의미


  문화는 늘 평화에 의미를 부여해왔습니다. 각각의 '에스노스' ― 민중, 공동체, 문화 ― 는 그 자신의 '에토스' ― 신화, 법률, 여신, 이상 ― 에 의해 비쳐지고, 상징적으로 표현되고 강화되어왔습니다. 평화는 말처럼 토착적인 것입니다. 이시다 교수가 선정한 예들 속에서 에스노스와 에토스 사이의 이러한 교응(交응)관계는 극히 명증하게 나타나 있습니다. 유태인의 경우를 보십시다. 유태인 가장(家長)이 팔을 들어 자신의 가족과 양떼들에 축복을 내리는 모습을 보십시오. 그는 '샬롬'이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그것을 평화로 번역합니다. 그는 '샬롬'을 "먼 조상 아론의 턱수염을 통해서 올리브 기름처럼 뚝뚝 떨어지면서" 하늘로부터 흘러오는 은총으로 여깁니다. 셈족의 아버지에게 평화는 유일하고 진정한 신이 최근에 정착한 양치기들로 된 열두 부족 위에 내려주는 정의의 축복인 것입니다.


  유태인에게 천사는 '샬롬'이라고 말하지, '팍스'라는 로마어를 말하지 않습니다. 로마의 평화는 전혀 다른 것을 의미합니다. 로마의 총독이 팔레스타인의 땅에서 보병군단의 군기를 치켜들 때, 그의 시선은 하늘로 향하지 않습니다. 그는 멀리 떨어져 있는 도시를 봅니다. 그는 그 도시에 법과 질서를 부과합니다. '샬롬'과 '팍스 로마나(pax romana)'는 같은 장소, 같은 때에 존재하더라도 그 둘 사이에는 아무것도 공통적인 것이 없습니다.


  우리 시대에 그 둘은 이제 모두 퇴색해버렸습니다. '샬롬'은 사사화(私事化)된 종교영역으로 물러나버렸고, '팍스'는 '평화'라는 말로 세계를 침략해왔습니다. 팍스는 2천년 동안 지배 엘리트들에 의해 사용되어왔고, 그 과정에서 온갖 잡동사니를 가리키는 말이 되어버렸습니다. 이 용어는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십자가를 이데올로기로 전환시키는 데 이용했습니다. 카알 대제는 이 용어를 삭손족의 대학살을 정당화하는 데 이용했습니다. 이노센트 3세는 칼[劍]을 십자가에 종속시키는 데 '팍스'라는 용어를 동원했습니다. 현대에 와서 정치지도자들은 이 용어를 조작하여 정당으로 하여금 군대를 통제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성 프란치스코와 클레망소가 다같이 사용했던 말인 '팍스'는 이제 그 의미의 경계를 잃어버렸습니다. 이 용어를 체제 쪽에서 사용하든 반체제 쪽에서 사용하든, 그 정통성을 동서 어느쪽이 주장하든, 그것은 종파적이고 선교적(宣敎的)인 용어가 되어버렸습니다.


  '팍스'라는 개념에는 다채로운 역사가 포함되어 있지만, 거기에 대해 별로 연구가 이루어지지는 않았습니다. 역사가들은 전쟁과 그 기술에 관한 논저로 도서관의 서고를 채우는 데 열중해왔을 뿐입니다. 오늘날 중국어 '화평(和平)'과 힌두어 '샨티'는 과거의 것과 다르지 않은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두 말 사이에는 큰 간극이 있어서 서로 비교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중국어 '화평'은 하늘(天)의, 위계질서 속에서의 부드럽고 고요한 조화를 의미하는 것인 반면에 인도의 '샨티'는 친밀하고 개인적이고 우주적이며 비위계적인 깨달음을 가리킵니다. 이렇듯, 간단히 말해서, 평화에는 동일화될 수 있는 것이 없습니다.


  구체적인 의미에서 평화는 '나'를 그에 대응하는 '우리들' 속에 자리잡게 합니다. 그러나 각 언어영역에 있어서 이 대응 내용은 각각 다릅니다. 평화는 제일인칭 복수의 의미를 고정시킵니다. '배타적인 우리들' ― 말레이어의 '카미' ― 의 형태를 규정함으로써 평화는 '포괄적인 우리들' ― 말레이어에서는 '키타' ― 이 대두될 수 있는 토대가 됩니다. 이 말레이어의 '카미'와 '키타' 사이의 차이는 태평양권의 사람들에게 자연스럽게 이해됩니다. 이것은 유럽에서는 전혀 낯선 문법적 구분이며, 서구적인 '팍스' 개념에는 전적으로 결여되어 있습니다. 현대 유럽어의 미분화된 '우리들(we)'은 의미론적으로 공격적인 단어입니다. 따라서, 아시아의 연구자들은, '키타'에 대하여 아무런 존중심이 없는 '팍스'에 대하여 철저한 경계심을 품지 않으면 안될 것입니다. 여기 극동에서는 평화연구가 서구에서보다는 좀더 쉽게 다음과 같은 자명한 원리에 토대를 두는 것이어야 할 것입니다. 즉, 전쟁은 문화의 차이를 없애는 경향이 있는 반면에 평화는 각 문화가 독자성을 가지고, 다른 문화와 비교될 수 없는 방식으로 꽃피는 조건이 된다는 기본원리 말입니다.


  그러므로, 평화는 결코 수출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평화는 옮겨가면 반드시 타락합니다. 평화의 이전(移轉)은 전쟁을 의미합니다. 평화연구가 이러한 자명한 인종학적 사실을 무시할 때, 그것은 평화유지를 위한 테크놀로지로 전환됩니다. 즉, 어떤 종류의 도덕 재무장론으로 떨어지거나 아니면 고급장교와 그들의 컴퓨터 게임에 의한 네거티브한 전쟁과학으로 전락해버릴 것입니다.


  평화는 인종학적, 인류학적 현실에 입각하지 않는 한, 비현실적인 단순한 하나의 추상이 되어버릴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평화의 역사적 차원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면 그때도 역시 평화는 비현실적인 것으로 그치게 될 것입니다. 극히 최근까지, 전쟁은 평화를 완전히 파괴할 수는 없었고, 또한 평화의 모든 수준에 침투해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전쟁이 계속되려면 전쟁을 지탱해주는 풀뿌리 민중의 자급의 문화(subsistence culture)가 존속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전통적인 전쟁은 민중의 평화의 지속에 의존했던 것입니다.



  전쟁의 역사를 넘어서


  너무도 많은 역사가들이 이 사실을 간과해왔습니다. 그들은 역사를 전쟁 이야기로 만들어버렸습니다. 이것은 강자들의 흥망성쇠를 기록하려고 하는 고전적인 역사가들에게 명백히 나타나고 있지만, 그와 동시에, 불행하게도, 정복당한 자들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사라져버린 사람들의 기억을 불러일으키고자 하는 좀더 최근의 역사가들에게도 마찬가지로 해당됩니다. 이들 새로운 역사가들도 너무나 빈번히 가난한 사람들의 평화보다도 폭력에 대해서 더 큰 흥미를 느끼고 있습니다. 그들은 주로 저항운동과 노예, 농민, 소수자, 소외된 사람들에 의한 반역과 반란과 폭동에 대해서 보고하고, 좀더 최근에는 프롤레타리아트의 계급투쟁과 여성해방투쟁을 다루어왔습니다.


  권력의 부침을 주목하는 역사가들에 비해서, 민중문화를 대상으로 하는 새로운 역사가들은 어려운 과제를 갖고 있습니다. 엘리트 문화와 군대가 일으킨 전쟁을 취급하는 역사가들은 문화의 중심부에 관해 기술합니다. 그들은 기념비, 돌에 새겨진 포고문, 상업거래 통신문, 왕들의 자서전, 그리고 진군하는 군대가 남겨놓은 족적들을 자료로 활용합니다. 그러나, 패배한 쪽에 서있는 역사가들에게는 이런 종류의 증거가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들은 지구의 표면에서 소거(消去)된 사람들, 그 족적이 적에 의해 말살되거나 바람에 날려가버린 사람들에 대해서 보고를 합니다. 농민과 유목민, 마을문화와 가정생활, 여성과 아이들의 역사를 기록하는 역사가들에게는 검토할 만한 흔적이 거의 남아있지 않습니다. 그들은 육감으로 과거를 재구축해야 하고, 속담과 수수께끼와 민요에 담겨있는 암시에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흔히 가난한 사람들, 특히 여성들이 남겨놓은 기록물은 '마녀'와 부랑자들이 고문을 당하면서 보여준 반응, 법정기록으로 남은 진술들입니다. 현대 인류학사(민중문화의 역사, 멘탈리티의 역사)는 이러한 '잡동사니' 기록들을 해독 가능한 것으로 만드는 테크닉을 발전시켜야 했습니다. 


  그러나, 이 새로운 역사도 흔히 전쟁에 초점을 맞추는 경향이 있습니다. 약자들이 스스로의 방어를 위해 적들과 싸운 충돌장면들이 주로 역사가들의 시선을 끄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항쟁의 이야기들이 다시 서술되고, 오직 함축적으로만 과거의 평화가 언급될 뿐입니다. 충돌은 적대관계에 있는 쌍방을 비교가능하게 만듭니다. 그래서 과거는 단순한 것으로 취급되고, 과거의 모든 것이 20세기적인 사고로 포착될 수 있다는 착각이 생겨납니다. 그리하여, 여러 문화를 동일한 것으로 만들어버리는 전쟁이 너무도 빈번히 역사가들의 서술의 틀이나 뼈대로 사용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들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평화의 역사입니다. 전쟁의 역사보다도 무한히 더 다양한 것이 평화의 역사입니다.



  경제권력들간의 균형으로서의 평화


  지금 평화연구라고 일컬어지는 것은 흔히 역사적 시각을 결여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연구의 주제는 문화적, 역사적 내용이 제거된 '평화'입니다. 역설적으로, 평화라는 것이 자원의 희소성을 전제로 한 경제적 권력들 사이의 균형으로 환원되었을 때 평화는 하나의 학문적 주제가 되어버렸습니다. 그리하여, 평화연구는 제로섬 게임에 갇힌 경쟁자들간의 최소한의 폭력휴전에 대한 연구로 제한되어버렸습니다. 이러한 연구는 희소성이라는 개념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연구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희소한 것이 아닌 것의 평화로운 향유, 즉 민중의 평화는 깊은 그림자 속에 가리워져버리는 것입니다.


  자원의 희소성이라는 것은 경제학의 근본가정이며, 공식적인 경제학은 이러한 가정 밑에서 제가치(諸價値)를 연구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희소성은 ― 그리고 공식적인 경제학에서 중시되는 것들은 모두 ― 대부분의 역사에 걸쳐 대다수 사람들의 생활에서 오직 주변적인 중요성밖에 갖지 못하였습니다. 생활의 모든 국면으로 희소성의 개념이 확산된 과정은 역사적으로 기술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중세 이래 유럽문명에서 발생했습니다. 희소성에 대한 가정(假定)이 확산되면서 평화는 유럽 이외의 지역에서는 그 어떤 곳에서도 전례가 없었던 새로운 의미를 지니게 되었습니다. 즉, 평화는 이제 '팍스 에코노미카'를 의미하게 된 것입니다. '팍스 에코노미카'는 공식적인 경제권력들간의 균형을 말합니다.


  이 새로운 현실의 역사적 전개는 우리의 주목을 요합니다. '팍스 에코노미카'가 평화의 의미를 독점해버린 과정은 특히 중요합니다. '팍스 에코노미카'는 평화의 의미를 처음으로 세계적 규모로 받아들여지게 하였습니다. 이러한 독점은 당연히 크게 염려해야 할 문제입니다. 따라서, 나는 이 강연에서 '팍스 에코노미카'와 반대편에 있으면서 동시에 그것을 보완하고 있는 민중의 평화(popular peace)에 비교하여 '팍스 에코노미카'를 설명해보고자 합니다.



  근대적 '팍스 에코노미카'의 출현


  유엔 창설 이후 평화는 점진적으로 '발전' 개념과 연결되어 왔습니다. 그 이전에는 이와 같은 연결은 생각도 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이 얼마나 새로운 현상인지 40세 이하의 사람들은 이해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그 기묘한 상황은 1949년 1월 10일에 나와 같이 성인이었던 사람들이 보다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날은 트루먼 대통령이 '4개항 프로그램'을 발표한 날입니다. 우리들 대부분은 바로 그날 지금처럼 사용되는 '발전'이라는 용어에 처음으로 마주쳤습니다. 그때까지 우리들은 '발전'을 생물종의 발달이나 부동산 개발, 또는 체스게임에서의 상황전개를 말할 때 사용해왔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날 이후 발전이라는 말은 사람들, 국가, 경제전략 등에 관해 쓸 수 있는 말이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한 세대가 채 경과하기도 전에 서로 대립하는 발전이론들이 홍수처럼 범람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이론 대부분은 이제 단지 골동품 수집가의 관심거리가 되었을 뿐입니다.


  여러분들은 아마 조금 당혹한 심정으로 기억하실지 모르겠습니다. "일인당 소득의 향상", "선진국 따라잡기", 또는 "의존상태의 극복"이라는 목표를 내건 연속적인 프로그램 때문에 사람들이 어떻게 끊임없이 희생을 요구받아왔는지를 말입니다. 그리고, "성취지향성"이니 "평화를 위한 원자력", "고용창출", 그리고 오늘날에는 "대안적 라이프 스타일", 또는 전문가의 조언 밑에서 이루어지는 "셀프 헬프(自助)" 등 한때는 수출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으로 여겨졌던 많은 것들에 대해서 지금 여러분은 의아스럽게 생각하고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이러한 아이디어들은 각기 물결을 이루어 밀어닥치곤 하였습니다. 한 물결은 기업활동을 강조하는 실용주의자들을 데려왔고, 다른 물결은 외래 이데올로기를 받아들이도록 민중들에게 설득하는 정치가들을 등장시켰습니다. 두 진영 모두 성장을 중시한다는 점에서는 일치하였습니다. 그들은 생산을 높이고, 소비에 대한 의존성을 높여야 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그리고, 각 진영의 전문가들 ― 구세주들 ― 은 평화를 향한 발전에 자신들의 프로그램을 연결시켰습니다. 그리하여, 구체적인 평화는 그렇게 발전개념에 연결됨으로써 하나의 당파적인 목표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발전을 통한 평화의 추구는 검증할 필요도 없는 자명한 공리가 되었습니다. 경제성장의 방법이 아니라 경제성장 그 자체에 반대하는 사람은 누구든 평화의 적으로 비난받게 되었습니다. 간디조차도 바보, 낭만주의자이거나 아니면 정신병자로 취급되었습니다.